세계발견자: 은폐되고 모호한 시각과 인식의 조형적 발견가 _ 박경린, 2013
개인전 <믿음없이> 전시 서문 지금까지 박천욱의 작품들은 일상의 사물들을 재배치하거나 사진적 보기의 과정을 비튼 조형물을 통해서 시각성에 기반을 둔 인식 체계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사물들을 한데 모아 투명한 비닐로 겹겹이 다시 포장하여 하나의 기념비적 오브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보여준 시각의 거짓말을 드러낸 작업이 그러했고, 한 발자국만 움직여서 보면 금방 들통 날 사진처럼 보이는 극장 속 얼룩말 조형물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박천욱의 작업들은 전시장을 나서는 관람객들에게 생경한 충격의 경험을 제공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될 박천욱의 작품들은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그러나 분명히 다른 관점에서 눈으로 보는 인식의 세계에 숨겨진 미지의 영역을 마치 탐험가와 같이 찾아내 보여준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고,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하얀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한 건장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들어간다. 박천욱의 <당신없이>의 짧은 영상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화면 속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빈 여백의 공간을 채우는 한 사내의 당당한 모습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 마치 순백의 도화지 앞에 그려진 사람처럼 반나체 상태로 당당히 서있는 건장한 사내의 모습은 강렬한 피부색으로 인해 한 인간이 가진 신체성이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태어난 듯 한 남성은 스스로 붓을 들고 본인의 몸을 흰색 물감으로 칠해 나가기 시작한다. 손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몸이 있다고 느끼는 인식의 범위까지 붓으로 칠하는 과정은 계속된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하얀 캔버스 위에 색을 더해나가는 과정과는 반대로 화면 속 남성은 하얀 배경 속으로 자기 자신을 지워나간다. 이러한 행위를 바라보면서 관람객은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자신의 신체를 객체화 시켜 몸에 대한 인식의 범위를 다시 한 번 확인 하는 경험을 제공받는다. 따라서 <당신없이>에서 보이는 짧은 퍼포먼스 영상은 ‘본다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보는 행위는 사실 이중의 주체를 요구한다.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대상이 서로에게 비추어 질 때 비로소 보는 행위가 성립된다. 그러나 박천욱은 당연한 명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거울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인식의 범위 안에 기대서 자신의 눈으로 확인된 몸만을 확인한다. 붓질은 인식의 순간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지운다. 지워진 신체에서 살아남은 부분은 작가가 예측하지 못한 불완전한 형태이고 우리의 눈과 의식이 닿지 못한 인간의 신체 위에 남겨진 미지의 공간이다. 그 미지의 공간은 곧 작가가 정해놓은 특수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형태에 대한 질문의 답이 되면서 동시에 ‘미술’이라고 불리는 시각성을 다루는 예술의 한 분야에 대한 의문과도 연결된다. 대상을 바라볼 때 완전한 총체성은 불가능하다. 하나의 사물을 온전히 이해하고 바라보기 위해서는 비교 가능한 다른 예시들과 함께 관점의 무한한 다양성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보는 행위에 따른 시간의 흐름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 중 <평형 갈등>은 작가의 다양한 전작들 가운데에서도 <<중간에서 자라다>> 연작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분명한 차별점을 가진 독립된 작품이기도 하다. 8개의 화분 위에 심어진 식물들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촬영한 영상과 그 실물이 함께 보일 이 작품은 경계를 두고 사물이 나가고 들어오는 중간 상태, 혹은 그 갈등의 지점을 보여준다. 영상 부분에서는 약 100일 동안 작가가 식물이 자라나는 과정을 애니메이션 작업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서 시간은 편집의 과정을 거쳐 재구성되어 있어 일직선의 시간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구불구불하게 과거와 미래를 오간다. 영상과 함께 제공되는 사운드에 따라서 폭발했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식물들의 움직임이 춤을 춘다. 설치된 무성하게 자란 8개의 연결된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의 모습은 ‘거기에 놓여 있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공간에 대해 일깨우고, 화분이 자라난 시간의 흐름만큼 공간이 동시에 시간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시선을 조금 돌려 전시장 다른 쪽을 바라보면 색면 추상과 같은 느낌을 주는 <<국기 연작>>들이 이목을 붙든다. 이 연작 작업은 지구상에 200여국이 넘는 국가들의 국기 중에서 어떤 나라의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국기들만을 골라 조합하여 다시 만든 상징적 국기이다. 예를 들어 <검은 상상>에서는 붉은색과 검정색, 별 모양이 주를 이루는 국기들을 조합하여 가상의 국가를 위한 국기를 다시 만든 것이다. 제목 없이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 관람객은 어떤 기준으로 배치되었는지 모를 다소 기이한 형태의 화면을 바라보면서 순간 머뭇거리게 된다. 작품의 제목을 확인하고 나서야 각각의 기호나 색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안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박천욱은 세상을 바라볼 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주는 차이에 대해서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박천욱 작가의 작품들은 시각성에 대한 의심을 던지는 동시에 하나의 세계를 보다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한 실험의 결과물들이다. 이전에 박천욱 작가의 작업들이 특정한 하나의 시점에서 사물을 바라볼 때 범할 수 있는 인식의 오류들을 조형적 실험을 통해서 관람객에게 전달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이런 태도에서 나아가 인식의 탐험자가 되어 알고 있으나 볼 수 없는 세계를 찾아나간다. 결과적으로 박천욱은 한 남성에게 스스로의 몸에 물감을 칠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숨겨지고 은폐된 신체의 공간을 발견했고, 8개의 방향으로 자라는 식물을 통해 본다는 행위에 대한 숨겨진 시간성을 드러내며, 국기 연작을 통해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작가의 시선으로 재구성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이 곧 삶이요 예술이라면, 그 과정에 이르는 길은 천 갈래 만 갈래 길로 흩어지고 모인다. 세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사물들이 그 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각화 된 대상으로 드러날 때 이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주체의 경험에 따라 확증되고 확장되어 나간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은 완전해지는 과정 속에 놓여져 있으며, 끝까지 완성되지 못할지라도 그 과정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이다. 박천욱의 작업은 이러한 의미의 맥락 안에서 일관성 있고 안정된 것이 아닌 불명확하고 불완전한 인식과 의식의 흐름 속에서 흩어져 있는 개별화된 이미지의 파편들을 모아 시각적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은폐되고 모호한 시각과 인식의 조형적 발견가로써 박천욱은 거짓된 믿음의 확신이 아니라 비겁할지 모르나 진실한 믿음의 의심을 통해 시각성에 의지된 불완전한 인식의 세계를 우리 앞에 드러낸다. 박경린 (미술비평) |